최근 4살 아이와 자주 만나게되었다. 아이가 노는 모습을 보면 꼭 연극의 모노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모노드라마는 1인 배우의 독백극을 말하는데, 꾸며진 배경도 없고 무대 소품도 없거나 거의 없지만 극의 시공간을 자유자재하며, 혼자 다양한 역할을 맡기도한다. 아이의 상상력에따라 귤은 공룡알이 되기도하고, 잘라먹은 김이 티라노사우르스가 되기도한다. 계속해서 상상을 펼치며 폴짝폴짝 뛰다 몸집이 커지는것을 표현하기도하고, 한쪽끝에서 반댓쪽 끝까지 달렸다 방향을 바꿔 달린다. 괴물이 나타나기도하고 공룡, 상어가 튀어나오기도한다. 이게 뭐지? 궁금해하고 이름을 지어주기도한다. 아이의 세계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궁금하다.
나는 아이를 대할때 아이의 세계를 최대한 침범하지않으려한다. 나는 아이에게 지식전달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자신의 색을 최대한 드러낼 수있게 아이가 나에게 배역을 줄때까지 개입하지 않으려한다. 귤이 귤이 아니고 공룡알이면 어떻겠는가.
누구나 이런 시기가 있었을텐데, 어느순간부터 활동성이 사라지고 사회에 길들여지며 모노드라마의 주인공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는걸까? 그 변곡점이 궁금하다.
어른들은 아이의 세계에 쉽게, 혹은 짓궂게 접근한다. 아이에게 관습적인 것을 전달하려하거나 가르치려는 것, 아이의 세계에 개입하는것, 아니야, 안돼, 하지마 같은 것들 말이다.
이 사회에는 어릴때 자신의 세계가 보호되지 못한 기억을 가진 아이어른들이 많다. 그들은 자신의 세계를 만들려고하거나, 지키려고하거나, 혹은 좌절해 도피한다. 타인의 세계에 지나치게 개입하기도하며 자신이 겪었던 것을 대물림한다. 나이들어 제멋대로 구는 사람이 많은 것은 어릴때 지킬수없었던 파괴된 자신의 세계에대한 보상심리인지도 모른다.
지켜지지못했던 나의 어린 시절 나의 세계, 그리고 지키려 방어하는 나의 부분에 대해 애도한다. 또한 아이의 세계를 지켜주지못했던 파괴된 세계의 아픔이 있었을 부모님의 미숙함과 아픔도 느낀다.
씨앗은 우주를 담고있고 이미 온전하다. 싹은 연약해서 지켜질 필요가있지만 뿌리를 내린 이후는 뽑지않는 이상 잘라내도 금새 자라나 결실을 맺는다. 사람도 비슷한 것 같다. 진짜 자신의 세계는 파괴될 수없지만 지켜지는 기간이 필요하다.(물론 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어른이 되어 스스로 회복할수도 있다) 자신의 세계를 온전히 구현하며 사는 존재는 애써 지킬 필요가없기에 여유로운 마음으로 타인들을 초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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